세부 현지 특파 일기를 일주일 늦게 신청했던 바람에

일기가 계속 딜레이 되고 있지만,

어느덧 이곳에 온지도 벌써 3주가 지났다.

같은 날 도착한, 한달을 일정으로 온 일본인 회사원들은

벌써부터 쇼핑몰에 가서 기념품을 사는 둥

다음 주에 돌아갈 준비로 한창이라 매우 분주하다.

미래를 계획하고 온 우리들과는 달리,

눈 앞에 먹고 살 일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는데다가

이번의 연수를 통한 성과를 가지고

당장 다음 나라(미국 또는 영국)의 회사 분점으로 나가

발 벗고 뛰어야 하는 현실을 등에 안고 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확실히 어린(?) 친구들에 비하면 자세가 다르다.

학원 수업을 모두 마친 피곤한 오후 시간에도,

남들은 모두 나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주말에도,

그 어느때건 어렵지 않게 이들을 도서관 안에서 마주칠 수 있다.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도 불구하고 '한 달' 이라는 시간은

눈에 띄는 성과를 기대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기만 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정말 정말 정말로 눈깜짝할 사이의 한달이다.

한국 학생들 중에는 그런 학생들이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일본 학생들 중에는 짧은 기간을 통해

약간의 공부와, 약간의 쾌락을(^^?) 함께 얻어가려하는 친구들도 많다.

그렇지만 내 소견으로는 한달은 정말 무리한 일정이다.

아무리 독한 마음을 먹고 오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국보다는 아무래도 싼 물가와,

주위에 널린 희락거리 앞에서는 무너지기가 쉽상인데다

아주 심하게 즐긴 것도 아니고,

주말 시간을 통해 쇼핑 한 번, 여행 한번, 외식 한번...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달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후딱이다.

 

8주를 계획하고 출발하는 학생들도 물론 많이들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기왕 영어를 늘리겠다는 마음으로 오는 것이고,

필리핀 이후로 다른 나라에 연계연수를 갈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니 설령 어쩌면 계획이 있다고 하더라도)

필리핀에서 가장 적절한 연수 기간은 3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필리핀은 다른 여느 영어 사용권 국가들에 비해서는

연수비용도 그렇고, 기본 생활비가 매우 싼 편인지라

이 곳에 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많게는 일주일에 한번

적게는 한달에 한두번 정도는 여행이나 쇼핑을 즐긴다.

 

최소한으로만 잡는다 해도

처음에 와서 환전하고, 초기 정착에 필요한 물품 몇가지 사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가족들, 친구들 위해 기념품 사고...

이렇게만 한다고 해도(이렇게 하기도 힘들지만^^;;)

벌써 쇼핑몰에 2번은 족히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와서 지내다 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고 해도 혼자서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학원에 있는 다른 학생들하고도 어울리고....

그러면 또 가끔 한번씩이라도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생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뜻하지 않은 외출도 생기게 되고,

또 그에 따른 지출도 생기게 된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중요하다.

맘 먹고 놀기 시작할려고 보면 필리핀은 정말 최고의 나라이다.

(필리핀까지 날아와서 한국 음식만 찾지 않는다는 전제하에는)

술도 싸고, 저렴하고 맛난 그릴 안주가 널렸고, 과일도 맛있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없는게 없다.

어쩌면 외국 상품 영향은 더 많이 받아서 한국에 없는 것도 더 많다.

 

이러한 무수한 유혹들 가운데서,

일단은 본인이 영어 하나 만큼은 확실히 잡아가지고 가겠다는

기본 신념이 뒷받침 되어 있다는 가정하에

적당히 유흥도 즐기고, 영어 실력도 늘려가지고 가는

1석 2조의 느낌을 가지고 돌아가려면..

내 생각에는 넉넉 잡아 최소한 3달이 아닌가 생각한다.

처음 내가 세부에 왔을 때 4달을 있어 보았지만,

이제 4달 이상쯤으로 들어가면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한국 생각도 나고,

맨날 반복되는 일상과 학원밥이 신물 나고 벗어나고 싶어지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도 영어 실력은 맨날 제자리를 맴도는 것만 같은 생각도 난다.

 

실제로 실력이 갑자기 증폭되듯 늘어나는 걸 느끼는 시기 또한

바로 이 3달째가 아닌가 싶다.

영어라는 것도 어찌 보면, 공부가 아니라

결국은 한국에서 한국말 쓰듯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사람들이 쓰는 말인지라...

이게 20년 가까이를 한국말 쓰면서 내내 살다가

갑자기 여기 와서 1-2달 밤새며 죽어라 공부한다고 해서

어느 순간 뿅~ 하고 늘어나는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리면 어릴수록(^^?),

또는 열심히 하면 할수록 개인 격차는 있겠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허구헌날 도서관에 붙어 앉아 책을 쳐다본들..

백날 나가노는 친구보다 5배는 더 공부하는데,

5배 빨리 안 는다고 한탄해봐야 별 소용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물론 5배 열심히 공부했다면

3달째쯤에 어느 순간 5배까지는 아니더라도

3배 정도가 퐁~ 하고 확 증폭되어 늘어난 느낌은 분명히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장담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신에 정말 그만큼 양심적으로 공부는 해야한다,ㅋㅋㅋ

 

필리핀으로 공부를 하러 오고 싶은데,

어느 정도 기간을 정하면 좋을지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3달을 추천해보고 싶다.

필리핀을 거쳐서 다른 서양권 국가 연계연수를

6달 이상 계획하고 있다면 2달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

단지 필리핀에서만 공부할 것이라면 4달도 많이 지루하지는 않다.

(대신 3달째쯤 이제 말도 좀 통하고 그러면 놀고 싶은 유혹을 참기가 더 힘들 것이다^^;)

 

몇 달인지도 중요하지만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아마 수많은 곳에서 읽어서 이미 고리타분해졌을 말이겠지만

한국에서 문법을 미리 꼭 공부하고 오라는 것이다.

필리핀은 헬로우, 땡큐만 알아도 시작하기에 어려움은 없는 나라지만,

문법책 한번 쫙 보고 오면 어떤 느낌으로 영어를 대하게 될지...

감히 상상도 안 될 것이다.

3달을 연수하면 6달 이상 공부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자부한다.

 

전에 말했듯이 나는 시필스에서 4달 정도 연수를 했었고,

이번 역시 친구와 함께 3달을 등록해서 이 곳 CELI에 왔다.

지금 한 달쯤 지나고 있는데, 친구는 실력이 그대로 인것 같다며 매우 괴로워한다.

모두들 한 달째쯤 되면 으레 당연히 느껴하는 바로 그 불안감이 아닐까 싶다.

이 쯤에서 포기하고 끈을 놓느냐, 아니면 물고 늘어지느냐에 따라

두 달째에 또 다른 갈림길에 다다르게 될 선택을 여기서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벌써 3주째를 지내고 있지만,

CELI를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딱히 없다.

불만스러운 것들이 왜 없겠느냐만은,

어딜 가도 당연히 존재할 그런 것들에 비해

시설도 훌륭하고, 밥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공부하려고 마음만 먹고 온다면 나머지 것들은

그에 걸맞게 뒷받침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편에서는 한 달 정도 CELI에서 지내면서

나름 개인적으로 느낀 장점들에 대해서 적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