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서막.

이전화의 말미에, 불행의 전조라고 썼었던가.

맛없고 비싸고 불친절한 식당에서, 불편하게 먹고 나왔던 탓일까. 상상하고 싶지 않은 밤의 일이다.

=> 어둠에 서서히 젖어들고 있는 필에이스의 저녁. 나는 다음날의 고통을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본디가 살성이 약한 편이다. 

왜 같은 모기에 물려도 하루 자고일어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치 혹이라도 난 것마냥 퉁퉁 부어올라 여러 날을괴로워 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지 않던가. 나는 단연 후자다. 

그래, 필리핀은 벌레가 많다. 나라는 사람은 벌레를 끔찍하게도 싫어하는이로서, 

일전 어린 시절에 살던 조그마한 아파트의 화장실에서 조그마한 날파리가 나왔었다고 하루 종일화장실을 가지 않았던 전례까지 있는이였다. 

 

각설하고, 나는오른쪽 발바닥 한가운데를 개미에게 물렸다. 

아, 물론 개미인지, 모기인지, 아니면 다른 끔찍한 무언가의 작품인지는 모른다. 

식당에서 밥을 먹던 중, 발바닥 한가운데에 따끔한 통증을 느꼈고, 그 이후 3~4일여의 시간 동안 괴로워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즈음이었다. 내 온몸에 자잘자잘하게 올록볼록 튀어나오던것들 말이다. 

분명 방에는 모기가 없었고, 나는 대부분의시간을 방에서 보냈건만, 

내 몸 여기저기에는 마치 모기라도 물린 것마냥 둥그스름한 원형의 구체가 솟아오르고있었다. 

초반에는 모기에 물린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것은 모기에 물려 부풀어오른 그것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없었다. 같은 방에서 자고 대부분의 시간을 나와 같이 보내는 사라는 단 한방도 물리지 않았으니까. 

나와 사라, 그리고 니나는 골똘히 생각했다. 나에게서만 좋은 향이 나는 건가, 

나의 피가 맑은 것인가- 하는 우스운 가설들이 주를 이뤘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온몸에모기 기피제를 뿌리고 바르는등의 수선을 떨며, 에프킬러같은 것들을 침대 주위에 뿌려댔지만 

내 몸엔 여전히영문모를 자욱들이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그러던 목요일 밤. 나는타는듯한 발바닥의 통증과 양 허벅다리 뒤쪽에 하나씩 생겨있는 

둥그스름한 녀석들의 간질거림으로 깼다 다시 잠들었다를 반복하며 괴로워했다. 

괴로워하는 나의 한쪽 손에는 핸드폰이 쥐여있었으며, 나는 진작에 필리핀 응급차의 전화번호를 알아두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니 조금 가라앉아 있었고, 나는 발바닥 한가운데에간질간질 따끔거리는 자국을 달고, 

영 찜찜한 기분으로 이전화의 그, 백오브 빈스로 다녀갔다 왔던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악몽은 그날 밤에 시작되었다. 

몸 여기저기에 둥그스름한 ‘두드러기’처럼 보이는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이 것들이‘모기’의 그것이 아닌, 다른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필리핀으로 오기 전 봤던 수많은 정보들 중 하나를 떠올렸다. 

필리핀 현지에서 식당의 물을 먹거나, 길거리의 음식을 그대로 먹으면 <<물갈이>>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날 밤 학원의 원생들과 여러가지 일들을 치르며, 느지감치 잠든나는 아침에 일어났다. 

=> 물갈이의 원흉 중의 하나?

한 친구의 노크소리로 깨어난 사라와 나는 다시 잠들기 위해 누웠다. 

잠에 잠겨든 침침한 목소리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나는내 양 발이 무척이나 간지럽다는 것을 느꼈다. 

양 발에 보기만해도 간지러워질 정도로 불그스름한 무언가들이솟아나 있었다. 

모기에게 물린 것이 알레르기 반응으로 달아오른 것인가.내 발이 밤새 이불 밖으로 나와있어서 모기들의 밥이 되었던 건가. 

 

사라와 시덥잖은 농담을주고받으며 여전히 누워있는데 나는 내 자신이 왼손 약지 손가락을 긁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사라는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깨닫는 순간, 내 온몸이 간지럽기시작했다. 

잠시간 혼돈속에 빠져있는데, 분명 방금전까지 새하얗게만했던 내 팔뚝에 둥그스름한 두드러기형상이 볼록볼록 솟아있었다. 

계속 간지럽던 허벅지쪽도 간지러운 것같았다. 

바지 밑단을 통해 손을 집어넣어보자 별로 보고 싶지 않을 우둘투둘한 형상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내 머리에는 번개와 같이 어떤 사실이 스쳤다. 맙소사! 그리고 나는 아! 나는 물갈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두루뭉실하게 떠올렸던 어떤 가설이 확정되는 것 같았다.

나는어제 특별히 달리 한일이 없었으며 유일한 것은 ‘처음’으로현지의 식당을 가봤다는 것. 

백 오브 빈스. 그곳은 현지의식당이었다. 물은 미지근했으며, 미리 떠다놓는 것인듯 했었다. 

 

나의 온몸은 간지러웠으며 특히 허벅지 뒤쪽의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은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었다. 

아마도 약한 살부터 좀먹히기 시작한 듯 했다. 

다급해진 사라와 나는잘 터지지도 않는 핸드폰을 부여잡고 구글과 네이버등에 검색을 하였다. 

 

<물갈이, 두드러기>혹은 <물갈이, 두드러기, 필리핀> 등을검색하며 

정보의 바다를 찾아헤매이던 괴롭던 나는 필자닷컴 매니저님께 카톡을 보냈다. 

현지 마닐라 매니저님께는 사라가 카톡을 했다. 

알레르기 약이라도 먹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필에이스’의 사무실에는 알레르기와 두드러기 관련으로 먹는약은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다행히도 가장 흉물스럽다는 허벅다리는 내 눈에 보이지도,

또한 가렵지도 않았지만 그것이 내 몸에 다닥다닥 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소름돋고 끔찍했다. 

나는 우선적으로 이곳 필에이스의 정수기에서 뜬 물을 많이 마신 후, 응급조치로물파스를 바른 후 잠을 청했다. 

<잠은 보약>, 그렇지않은가. 사라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받으며,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안대와 귀마개까지 낀 나는 이불속에 폭하니 파묻혀 잠들어버렸다.

=> 그리고 날 살린 깨끗한 필에이스의 정수기 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잠에서 깨어나 일어났다. 그리고는 제일 간지러웠던 발쪽을 봤다.

‘응?’

분명 잔뜩 돋아나 있었던 오돌토돌하고 불그스름한 것들이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이다. 

 

나는 황급히 잠들기 전에 봤던 팔다리의 그 끔찍한 형상들을 찾아보았다. 모두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허벅지 뒤쪽을 더듬어보았지만, 아까전의그 오돌토돌한 느낌은 나지 않았다. 

나는 꿈이라도 꾼 것인지. 꿈이었다면정말로 황당하고 짜증나며, 

역겨운 꿈이었다고 혀를 내두르고 있는데 옆쪽에 잠들어있던 사라가 내 인기척을느끼고 일어났다. 

 

사라는 조금 더 쉬라고, 왜 일어났냐는말을 했고 나는 사라가 보고 경악했었던 내 허벅지의 그 놈들을 보여주었다. 

사라도 놀랐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남아있는건, 개미인지 모기인지에 물렸던, 

아직까지 멍자욱으로 남아있는 발바닥한가운데의 희미한 통증과 가장 심했던 허벅다리에 

동그랗게 솟아있는 하나의 둔덕뿐. 마치 한 여름 밤의끔찍한 꿈마냥, 그것들은 끔찍하게 왔다, 소리 없이 사라졌다.

 

지금 추측해보자면, 나는 일전부터 희미하게 물갈이를 하고 있었던 것은아닐까 싶다. 

개미에 발바닥 한가운데를 물린 그때를 시점으로 천천히 돋아나던 그 둥그스름한 것들 말이다. 

모기에 물린 것이 아니라 물갈이의 신호였다. 그러던 중 필리핀의현지 식당을 가서 한번에 확- 뒤집어져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짧은 수면과 함께 날아가버렸다. 백일몽마냥. 

필자닷컴 이승민매니저님께서 내게 <조금 있으면 가라앉을 것, 그러나가라앉지 않는다면 

오피스에 얘기해 병원에 갈 것>이라고 조언해주신 그대로였다. 

온통 무섭고, 경악했던 그때의 나를 진정시켜주셨던, 쉬는 날임에도 일어나자마자 답장을 보내주신 이승민 매니저님께 감사한다. 

그리고아직 몇 번이나 남았을지 모를 물갈이의 처음을 견뎌내 준 내 몸에게도 감사한다.

힘든 밤이었다.